광주 여성친화마을 선후배 작가 5인이 엮은 수공예의 서사, 느린 손의 기록 ‘Slow Creation’

남구미리네의 여성서사 굿즈 작품 선보여

[이미지=여성친화마을 선후배 작가 연합 전시회, ‘느린 손의 기억’ 포스터]

 

물결이 천천히 흐르는 듯한 시간의 결 속에서, 다섯 명의 여성 작가들이 각자의 손끝으로 세상을 엮어내는 이야기가 광주에서 피어났다.


2025년 11월 3일부터 9일까지 광주광역시 상무대로의 수페그린 카페에서 열린 ‘Slow Creation: 느린 손의 기록’ 전시는 빠름의 시대 속에서 잊혀가는 ‘느림’의 가치를 되새기는 자리였다.

 

이 전시는 단순히 공예품을 전시하는 행사가 아니라, 여성친화마을의 선후배들이 함께 기획하고 꾸린 공동 전시였다.
세대와 경험이 어우러진 이들은 손의 언어로 삶을 말하고, 그 속에서 다시 관계를 짓는 느린 예술의 길을 걸었다.
손끝에서 시작된 작은 움직임은 결국 하나의 서사가 되어, 여성들의 내면과 공동체의 온기를 동시에 품었다.

 

[사진=여성친화마을 선후배 작가 연합 전시회, ‘느린 손의 기억’, 손한나 작가의 제스모나이트 오브제]

 

수페그린 카페의 전시장 문을 열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작가 손한나의 작품이었다.
그녀는 마을공동체 ‘첨단살롱 여문손’에 속한 작가로, 제스모나이트(Jesmonite)라는 친환경 재료로 만든 생활 소품들을 선보였다.
테이블 위에 놓인 트레이와 오브제의 질감과 파스텔의 색감이 어우러져 고요한 자연의 표면처럼 보였다.


손 작가는 “제스모나이트는 차가운 재료이지만 손끝으로 만지면 따뜻해진다”며, “그 온기를 관객에게 천천히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녀의 작품은 일상에서의 예술을 보여주는 동시에, 느림의 철학이 녹아 있는 하나의 풍경이었다.

 

[사진=여성친화마을 선후배 작가 연합 전시회, ‘느린 손의 기억’, 김미정 작가의 손뜨개 인형]

 

전시의 한쪽 공간에는 김미정 작가의 손뜨개 인형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손으로 만드는 세상’이라는 마을공동체 대표여서인지 그녀의 세계는 부드럽고 따뜻했다.


다양한 표정을 가진 인형들이 나란히 앉아 있었고, 작은 곰인형 옆에는 손뜨개로 만든 미니언즈가 귀엽게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그녀는 “한 코, 한 코를 엮을 때마다 마음이 차분해진다. 이 느린 시간이 바로 나의 기록이다”라고 말했다.


김 작가의 작품들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세월과 정성이 쌓여 만들어진 감정의 조각이었다.
그녀의 인형은 관람객에게 어릴 적의 기억을 되살리고, 손으로 만드는 행복의 본질을 일깨웠다.

 

[사진=여성친화마을 선후배 작가 연합 전시회, ‘느린 손의 기억’, 이미희 작가의 도자기 악세사리]

 

도자 공예가 이미희의 도자 작품도 인상적이었다.
백자 위에 실로 꿰맨 듯한 금속선이 이어져 있고, 그 끝에는 작은 구슬이 흘러내리듯 매달려 있었다.
하얀 백자 위로 그어진 선은 마치 상처의 흔적 같았고, 동시에 회복의 상징처럼 보였다.


그녀는 “여성의 삶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봉합의 순간들이 많다.
그 기억을 도자 위에 실처럼 꿰매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미희의 작품은 고요한 미학 속에서 강한 내면의 이야기를 전했다.
그녀의 손끝은 예술로 기억을 꿰매는 바늘이었다.

 

[사진=여성친화마을 선후배 작가 연합 전시회, ‘느린 손의 기억’, 이미희 작가와 조선주 작가 작품]

 

그 옆에는 '동구&동아s' 마을공동체 대표인 조선주 작가가 만든 패브릭 소품들이 있었다.
손바느질로 완성된 쿠션, 리사이클 원단으로 제작한 파우치와 인형들이 따뜻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조 작가는 버려진 천 조각들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으며, ‘다시 태어난 것들’을 전시의 주제로 삼았다.
“낡은 천에는 이야기가 있고, 그 시간은 결코 헛되지 않아요.
손으로 천천히 이어 붙일수록 그 기억이 아름답게 살아납니다.”
그녀의 말처럼, 작품은 지속가능한 창작의 메시지와 함께, 여성의 인내와 회복의 감정을 담고 있었다.

 

[사진=여성친화마을 선후배 작가 연합 전시회, ‘느린 손의 기억’, 김유미 작가의 여성서사 굿즈(상단부)와 조선주 작가의친환경 패브릭 가방(하단부)]

 

전시의 마지막 공간에는 김유미 작가의 굿즈 전시가 있었다.
스텐텀블러, 마그네틱 굿즈, 석고방향제 등이 단정히 진열되어 있었고, 그 하나하나에는 여성의 이야기와 광주의 풍경이 함께 녹아 있었다.
그녀는 ‘굿즈로 만드는 여성 서사’의 기록자로서, 생활 속 물건을 예술의 언어로 바꾸는 실험을 이어가고 있다.
김 작가는 “굿즈는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기억과 스토리를 나누는 매개체입니다.
여성의 삶, 도시의 온도, 그리고 공동체의 정서를 함께 담아내고 싶었습니다”라고 전했다.


그녀의 작업은 ‘이야기가 있는 디자인’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보여주며, 관람객으로 하여금 자신의 일상 속 예술을 다시 바라보게 했다.

 

이번 전시는 다섯 명의 작가가 한데 모여 서로의 손끝을 이어준, 연대의 기록이었다.


이들은 여성친화마을이라는 공동체에서 만나 세대의 벽을 허물고, 예술로 서로의 시간을 엮었다.
선배 작가들이 후배들에게 경험을 나누고, 후배들은 새로운 재료와 감각으로 전통을 이어갔다.


그 느린 손길은 서로를 닮아가며 하나의 이야기가 되었다.

수페그린 카페의 따뜻한 공간 또한 이 느린 손들의 서사에 잘 어울렸다.


커피 향이 은은히 감도는 카페 한켠에서 열린 이번 전시는, 관람객에게 ‘일상 속의 예술’이라는 개념을 자연스럽게 체험하게 했다.
공예품을 구경하는 사람들은 단순히 물건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깃든 시간과 마음을 느꼈다.
어떤 이는 인형의 표정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고, 어떤 이는 백자 위의 선을 따라가며 자신의 상처를 떠올렸다.

 

‘Slow Creation’은 제목 그대로, 느림의 가치가 예술로 승화된 순간이었다.
작가들은 빠른 세상 속에서도 손으로 삶을 기록하며, 여성의 내면과 공동체의 이야기를 꿰매듯 이어갔다.


그 느린 리듬은 결코 뒤처짐이 아니라, 더 깊은 삶의 속도였다.

일주일간 이어진 이 전시는 작지만 단단한 울림을 남겼다.


누군가는 작품을 통해 위로를 받았고, 또 누군가는 자신의 일상에서도 예술을 찾을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
그 모든 과정은 결국 하나의 진실로 귀결된다.
손의 기록은 곧, 여성의 역사이며, 마을의 기억이다.

 

 

전시 개요

전시명: Slow Creation – 느린 손의 기록

기간: 2025.11.03 ~ 2025.11.09

장소: 광주광역시 상무대로 128-1 수페그린 카페

참여 작가: 손한나(첨단 살롱 여문손), 김유미(남구 미리네), 조선주(동구&동아s), 김미정(손으로 만드는 세상), 이미희(공예작가)

주최: 여성친화마을 선후배 공동기획

 

느림은 단지 속도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서로를 이어주는 태도이자, 자신을 돌보는 방식이었고, 여성의 시간 속에서 피어난 예술의 형태였다.
‘Slow Creation’은 그 느린 손의 흔적을 한자리에 모아, 세상의 모든 창작이 결국 사람의 온기에서 시작된다는 진리를 조용히 일깨워주었다.

 

김유미 문화부 기자 yum1024@daum.net
작성 2025.11.10 09:25 수정 2025.11.10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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