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하지의 영화 리터러시] 환상의 빛

-파얄 카파디아의 <우리가 빛이라 상상하는 모든 것>



우리가01


빛을 상상하는 순간은 어두운 밤이다. 어둠에서 상상하는 빛은 희망일 수 있고, 과거일 수 있으며, 지금 당면한 현실의 과제일 수도 있다. 인도의 뭄바이 노동자들에게 빛은 고단한 일상에서 잠시 스며드는 미소이거나, 함께 차를 마시는 시간일지 모른다. 혹은 종교 행사에서 다 함께 추는 춤이며 퇴근 후 집으로 가는 전철에서 바라보는 도시의 불빛이다. 이들은 빈민가에 살아도 분노하지 않는다. ‘뭄바이의 혼’이라 불리는 어떤 환상이 이들의 삶을 이어가게 하는 유일한 끈처럼 작동한다. 외부에서 돈을 벌기 위해 이곳에 모여든 사람들. 이 영화는 그들 중 세 명의 여성 노동자에 관한 이야기다.


우리가02


영화의 시작은 뭄바이의 밤을 전철로 천천히 가로지르는 트래킹 숏이다. 노동자의 나레이션이 깔리며 도시를 훑는 이 장면은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보인다. 관객은 잠시 이 작품을 ‘뭄바이’라는 거대한 유기체를 기록하는 도시 다큐로 오해하게 된다. 그러나 곧 우리는 지친 몸을 끌고 퇴근하는 간호사 프라바를 만난다. 영화는 도시의 얼굴에서 개인의 얼굴로 조용히 초점을 이동시킨다.


우리가03


프라바가 진료하고 있는 환자는 죽은 남편의 환영을 본다며 약을 숨긴다. 할머니 환자에게 남편의 환영은 뚜렷하며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을 정도다. 프라바는 집안의 결정에 따라 결혼했지만, 남편은 결혼 직후 외국으로 떠나버렸다. 연락은 뜸해지고, 관계는 유령처럼 남아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무런 편지나 설명 없이 밥솥 하나가 배달된다. 이 기묘한 선물은 사랑의 증표라기보다 부재의 증거처럼 보인다. 프라바는 혼란스러워한다. 이 물건은 관계의 공백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프라바와 함께 사는 아누는 무슬림 남자 친구를 사랑하고 있다. 힌두교 중심의 사회에서 두 사람의 관계는 위태롭다. 전통적인 결혼을 선택했던 프라바의 눈에 아누의 선택은 위험하고 무모해 보인다. 그러나 프라바의 비판은 단순한 도덕적 판단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이 선택하지 못했던 삶에 대한 은근한 반응이기도 하다. 병원 의사 마노즈가 프라바에게 조심스럽게 다가오지만, 그녀는 끝내 마음을 열지 못한다. 이미 한 번 제도 속으로 들어갔다가 공허만을 남긴 경험이 그녀를 붙잡고 있기 때문이다. 파르바티는 죽은 남편과 살았던 방적 공장에서 살고 있지만 원주인 나타나 철거를 요구하면서 쫓겨나야 할 처지이다. 프라바가 개인적으로 아는 변호사에게 부탁해 상담을 받아보지만, 남편은 문서 하나 남겨 놓지 않았다. 결국 파르바티는 자신의 고향으로 내려가게 된다. 

카파디아의 카메라는 이들의 갈등을 극적으로 부각하지 않는다. 대신 반복되는 병원의 복도, 야간 근무의 형광등, 축축한 밤공기, 창밖의 네온사인을 차분히 응시한다. 이 영화에서 빛은 절대 눈 부시지 않다. 오히려 어둠과 섞여 흐릿하게 번진다. 그래서 제목의 ‘빛’은 실체라기보다 상태에 가깝다. 우리는 빛을 본다기보다, 빛을 상상한다.


우리가04


이 점에서 영화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데뷔작<환상의 빛>을 떠올리게 한다. 고레에다의 영화에서 빛은 상실 이후에야 비로소 감지되는 미세한 감각이었다. 남편의 죽음이라는 거대한 공백을 통과한 뒤, 인물은 설명할 수 없는 빛을 바라본다. 카파디아의 영화에서도 빛은 결핍 이후에 나타난다. 프라바에게 남편은 멀리 떠나 있으며 밥솥을 보내는 설명할 수 없는 존재이다. 고레에다가 존재의 공백을 응시한다면, 카파디아는 삶의 조건을 견디는 얼굴을 바라본다.

영화 후반, 인물들이 도시를 벗어나 바다로 향하는 장면에서 리듬은 변한다. 도시의 소음 대신 파도 소리가 들리고, 형광등 대신 자연광이 스며든다. 그러나 이것은 구원의 장면이 아니다.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관계도 명확히 정리되지 않는다. 다만 인물들은 서로의 곁에 서 있다. 

바다에서 떠내려온 남자를 구한 프라바는 이 남자가 자신을 떠난 남편이라는 환영을 본다. 뭄바이를 떠나온 후에야 뭄바이의 혼을 보는 것이다. 프라바가 보는 남편은 사실 프라바가 상상하고 싶었던 남편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이 상상은 영화 전반부의 할머니 환자가 보았던 남편의 환영과 겹친다. <환상의 빛>에서 유미코가 그토록 궁금해했던 건 '왜 남편이 자신을 버리고 떠났는가?'이다. 할머니 환자의 남편, 프라바의 남편, 파르바티의 남편, 그리고 유미코의 전남편, 이 모든 남편에 대한 부재는 희미한 새벽의 빛으로 남아서 떠돌다 사라진다. 사랑의 부재에 대한 환상의 빛은 우리가 상상하는 흔적이 빛으로 남아 떠도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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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빛이라 상상하는 모든 것>은 거대한 사건을 다루지 않는다. 대신 사소해 보이는 일상의 균열을 통해 묻는다. 우리는 무엇으로 삶을 견디는가. 빛은 어디에 있는가. 혹은 우리는 끝내 빛을 보지 못한 채, 다만 그것을 상상하며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이 영화에서 빛은 미래의 약속이 아니다. 그것은 현재를 버티게 하는 감각이다. 어둠이 완전히 걷히지 않아도, 사람은 서로를 비추며 살아간다. 영화의 마지막 해변가 카페에서 아누가 숨겨놓았던 남자 친구는 이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비록 종교가 달라도, 결혼으로 이루어지지 못하더라도 우리 앞에 등장하는 '사랑'이라는 희망 앞에 축복을 내리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상상하는 빛의 모습이다.  




K People Focus 모하지 칼럼니스트 (mossisle@gmail.com)


영화와 음악을 사랑하며 아이들에게 독서와 글쓰기를 가르치는 희망의 칼럼니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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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26.02.24 13:42 수정 2026.02.24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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