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기획] 화성, 대한민국 우주산업의 새 심장이 될 수 있을까

반도체·전장 제조기반 위에 그리는 '우주 하드웨어 허브'의 청사진

양현상 박사 “우주항공산업 클러스터 허브, 10년 안에 글로벌 경쟁력 확보 가능”

경기도 화성시가 추진 중인 우주항공산업 클러스터 허브 조성 사업이 국내 우주산업 지형을 바꿀 새로운 성장축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판교가 소프트웨어·AI 중심지로 자리 잡았듯, 화성이 우주 하드웨어와 시스템 통합의 거점으로 도약할 잠재력을 갖췄다는 분석이다. 본지는 ‘우주경제에 투자하라’ 저자이고 우주항공 방산 솔루션 기업 노바엑스와 국방융합기술연구소를 이끌며 우주산업 자문기획위원으로도 활동하는 양현상 박사를 만나 화성시의 가능성과 과제를 짚어봤다.

 

왜 화성인가, "새 산업이 아니라 기존 역량의 전환"

양 박사가 화성의 가장 큰 강점으로 꼽은 것은 의외로 '우주'가 아니었다. 바로 이미 지역에 뿌리내린 제조업 생태계다. 그는 "반도체와 전장, 정밀가공, 첨단소재 기업들이 이미 밀집해 있어 우주산업에 필요한 부품과 시스템을 빠르게 공급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우주산업 육성은 지역에 전에 없던 산업을 새로 이식하는 작업이 아니다. 오히려 "기존 제조 역량을 우주 품질 기준으로 전환하는 과정"이 핵심이라는 것이다. 위성과 발사체에 들어가는 전력변환장치, 모터드라이브, AI 연산장치, 열제어 부품 등은 화성 지역 기업들이 기술적으로 충분히 진입 가능한 분야로 꼽힌다. 이미 자동차 전장 부품이나 반도체 공정에서 검증된 정밀 제조 노하우가, 조금 더 까다로운 신뢰성 기준을 충족하도록 다듬어지기만 하면 우주용 부품 공급망으로 편입될 수 있다는 논리다. 양 박사는 이런 맥락에서 화성의 미래상을 한 문장으로 요약했다. "판교가 AI 소프트웨어 중심지라면 화성은 우주 하드웨어와 시스템 통합의 중심지가 될 수 있다."

정명근 경기 화성시장 민선9기 취임 선서 화성시 제공

발목 잡는 병목, 시험평가 인프라의 부재

그러나 청사진만으로 산업이 자라지는 않는다. 양 박사는 현재 국내 우주기업들이 마주한 가장 현실적인 장벽으로 시험평가 인프라 부족을 지목했다. 위성이나 발사체 부품이 실제로 우주 환경에서 작동하려면 환경시험, 진동·충격시험, 전자파 시험 등 여러 단계의 검증을 거쳐야 하는데, 이 시설들이 전국에 흩어져 있어 기업들이 시험 한 번을 위해 여러 지역을 오가야 하는 비효율이 크다는 지적이다. 그는 이 지점에서 화성이 실질적인 차별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봤다. "화성에 원스톱 시험평가센터를 구축하면 개발 기간과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며 "기업 유치 경쟁에서도 강력한 차별화 요소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화려한 상징물보다 기업이 당장 아쉬워하는 실무 인프라를 먼저 채워주는 것이 클러스터 조성의 실질적 성패를 가른다는 뜻으로 읽힌다.

 

고흥과의 역할 중복 우려, "경쟁이 아니라 분업"

우주산업 거점을 자처하는 지자체가 늘면서 자연스럽게 제기되는 질문은 '중복 투자' 우려다. 특히 발사장을 보유한 전남 고흥과의 기능 중복 가능성에 대해 전남 우주산업 클러스터 자문기획위원이기도 한 양 박사는 명확히 선을 그었다. "경쟁이 아니라 역할 분담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가 제시한 그림은 이렇다. 전남 고흥과의 역할 중복 우려에 대해서는 “경쟁이 아니라 역할 분담이 필요하다”고 선을 그었다. 고흥은 발사와 비행시험, 화성은 부품 개발과 조립·시험평가, 대전은 원천기술 연구, 사천은 체계종합과 생산을 맡는 방식의 국가 우주산업 네트워크를 제안했다. 각 지역이 저마다의 강점을 살려 하나의 국가 단위 우주산업 네트워크로 연결되면, 개별 지자체의 중복 투자 리스크를 줄이면서도 산업 전체의 경쟁력은 끌어올릴 수 있다는 구상이다. 화성이 이 네트워크 안에서 맡을 역할은 '부품 개발과 조립·시험평가'로, 앞서 언급한 제조 기반 및 시험평가센터 구상과 정확히 맞물린다.

 

3단계 로드맵, 조직 설치부터 글로벌 공급망까지

양 박사는 현재 국내 우주기업들이 가장 큰 어려움으로 시험평가 인프라 부족을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환경시험과 진동·충격시험, 전자파 시험 등을 위해 여러 지역을 이동해야 하는 비효율이 크다는 것이다. 그는 “화성에 원스톱 시험평가센터를 구축하면 개발 기간과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며 “기업 유치 경쟁에서도 강력한 차별화 요소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추진 방안으로는 ▲2026~2028년 우주항공 전담 조직 설치와 기업 집적 ▲2028~2031년 시험평가·실증 인프라 구축 ▲2031~2035년 해외 우주기업 유치와 글로벌 공급망 연계를 제시했다. 그는 이 로드맵의 원칙으로 '조급한 상징화 지양'을 들었다. "처음부터 거대한 랜드마크를 짓기보다 기업들이 당장 필요로 하는 장비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대형 전시관이나 기념비적 시설보다, 기업이 실제로 쓸 수 있는 장비와 서비스부터 채워나가는 것이 10년 뒤 클러스터의 실질적 경쟁력을 좌우한다는 실용주의적 접근이다.

 

위성의 미래, "궤도 위의 엣지 AI 플랫폼"

인터뷰에서 양 박사는 자신이 이끄는 노바엑스가 개발 중인 AI 기반 우주 연산장치와 모터드라이브 시스템도 소개했다. 그는 위성 산업의 패러다임 자체가 바뀌고 있다고 진단했다. "앞으로 위성은 단순 데이터 송신 장비가 아니라 궤도에서 스스로 판단하는 엣지 AI 플랫폼으로 진화한다"는 것이다.

이 전망이 화성과 맞닿는 지점은 분명하다. 화성이 AI 반도체 기업들과 협력 관계를 구축한다면, 차세대 위성 시장에서 앞서 언급한 '우주 하드웨어 + AI 연산' 조합의 경쟁 우위를 선점할 수 있다는 것이 양 박사의 판단이다.

 

관건은 기술이 아니라 '행정 속도'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양 박사가 가장 힘주어 말한 대목은 뜻밖에도 기술이 아닌 행정이었다. 그는 "우주기업은 기술만큼 행정 속도에 민감하다"고 잘라 말했다. "부지와 인허가, 시험 일정이 지연되면 투자 방향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화성시가 기업 친화적 행정과 신속한 의사결정을 보여준다면 국내외 기업들이 충분히 모일 것"이라며, "지금이 화성이 대한민국 우주산업의 새로운 중심축으로 도약할 수 있는 결정적 시기"라고 강조했다.

 

남은 과제들

양 박사의 구상은 화성이 가진 제조업 기반이라는 강점을 명확히 짚어내지만, 동시에 몇 가지 질문도 남긴다. 시험평가센터 구축에 필요한 초기 투자 재원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지, 고흥·대전·사천과의 역할 분담이 실제 국가 정책 차원에서 어떻게 제도화될 수 있을지, 그리고 2026~2028년으로 제시된 전담 조직 설치 일정이 실제 행정 절차 속에서 지켜질 수 있을지는 앞으로 화성시와 관련 부처가 풀어야 할 숙제로 남는다. 그럼에도 반도체·전장·정밀가공이라는 기존 산업 자산 위에 우주 품질 기준을 얹는다는 접근법은, 무에서 유를 만드는 방식보다 현실적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화성이 이 전환을 얼마나 빠르고 매끄럽게 이뤄내느냐에 따라, 향후 10년 국내 우주산업 지도의 한 축이 다시 그려질 수 있다.

작성 2026.07.21 07:51 수정 2026.07.21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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