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꼬마 싱클레어, 잘 들어. 나는 이제 떠나야 해. 언젠가 네가 다시 내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크로머 때문에든, 다른 어떤 일 때문이든 말이야. 하지만 그때 네가 나를 부른다고 해도, 예전처럼 말을 타고 달려오거나 기차를 타고 찾아올 수는 없어. 그럴 때는 너 자신의 내면에 귀를 기울여야 해. 그러면 내가 이미 네 안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거야. 알겠니?”
-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서
부상을 입고 야전병원 침대에 나란히 누운 데미안이 싱클레어에게 말했다.
“너 자신의 내면에 귀를 기울여야 해. 그러면 내가 이미 네 안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거야. 알겠니?”
그동안 싱클레어를 온전한 인간으로 성숙시켜 준 데미안은 누구일까?
전래 동화 ‘콩쥐 팥쥐’에서 콩쥐는 동물들의 손길을 빌려 위기를 넘긴다. 검은 소가 자갈밭을 매주고, 두꺼비가 깨진 단지를 막아 주며, 참새 떼가 섞여 있는 곡식을 골라준다.
이 동물들은 다름 아닌 콩쥐 자신의 ‘내면의 힘’을 상징한다. 비록 어리고 힘겨운 상황에 놓였을지라도, 두려움 없이 당당하게 맞서면 자신도 알아채지 못했던 내면의 힘이 깨어나 눈앞의 난제들을 해결해 준다는 이 세상의 오묘한 이치를 말해준다.
데미안도 마찬가지다. 싱클레어 내면의 힘, 영혼을 상징한다. ‘정신일도하사불성(精神一到何事不成)’이라는 말이 있다. ‘정신을 한곳으로 모으면 무슨 일인들 이루어지지 않으랴.’라는 뜻이다. 데미안이 싱클레어에게 촉구한 것도 바로 이 내면의 집중, 즉 자기 자신에게로 온전히 몰입하는 힘이었다.
인간의 정신은 천지자연과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우리가 정신을 한곳에 모아 온 힘을 다하면, 삶은 조금씩 그 방향으로 우리를 이끌어 간다.
싱클레어가 크로머에게 당했던 것도 스스로 불러온 일이다. 우리의 내면은 자신과 비슷한 삶을 향해 움직인다.
싱클레어는 이제 내면의 영혼을 확연히 깨닫게 되었다.
싱클레어는 자신을 등불로 삼아 자신의 길을 찾아갈 것이다.
[고석근]
수필가
인문학 강사
한국산문 신인상
제6회 민들레문학상 수상.
이메일: ksk21ccc-@daum.net


